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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HYE SEON
EXHIBITION
SOLO

세월을 빚다

갤러리도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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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이 빚어낸 시간의 풍경

갤러리 도스 김선재


한혜선의 작업은 시간을 바라보는 고요한 명상이다. 작가는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도자기의 세계를 회화적 언어로 풀어내며 인간의 삶과 기억이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화면 속 도자기는 단순히 사물을 그린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이 스며든 흔적이자 자연과 인간이 맞닿는 경계의 기록이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자 순환의 상징이다. 작가에게 흙의 질감과 색을 캔버스 위에 옮기는 일은 시작을 다시 써 내려가는 행위이며 기다림과 포용의 시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의 형상 안에는 살아 있는 시간의 결을 품고 있다. 그림 속 도자기는 조용하지만 그 속에는 생성과 소멸, 균열과 회복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숨 쉬고 있다. 그것은 삶을 담는 그릇이자 시간을 품은 조형이다. 이는 인간의 삶과 닮아 있으며 완벽함보다 살아 있음의 증거를 담고 있다.

화면에 그려진 도자기의 본질은 형태의 완성보다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색을 반죽하고 물성을 다듬으며 화면 위에서 층을 쌓는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수행에 가깝다. 그 과정 속에는 작가의 호흡과 내면의 리듬이 서려 있다.

그가 그려낸 도자기의 표면에는 불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색의 변화와 미세한 균열이 남는다. 이들은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개입을 닮아 있으며 작가는 그 우연을 거부하지 않는다.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질서가 있으며 작가는 그 질서를 받아들인다. 완성된 형태보다 그 안에 스며든 시간의 결이 중요하다. 화면의 균열은 세월의 주름처럼 느껴지고 덧칠된 색의 무게는 인생의 농도를 닮았다.

주 소재로 등장하는 도자기는 달항아리나 질그릇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는 단순한 재현은 아니다. 작가는 전통적인 형태 속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는다. 비워진 공간과 남겨진 자취 사이의 긴장을 탐구하며 완결과 미완, 안정과 불안의 경계를 섬세하게 다룬다.

달항아리의 둥근 형태는 포근함과 불안정함을 함께 품고 있으며 질그릇의 표면에는 손의 온기와 사용의 흔적이 배어 있다. 이처럼 한혜선에게 회화는 물질이 지닌 기억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그는 흙이 불에 구워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키면서도 그 이전의 유연한 상태를 색과 질감으로 되살린다. 완성된 결과보다 그 안에 스며든 손의 흔적과 과정의 기록을 작품의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색의 번짐과 층위는 마치 시간이 쌓인 풍경처럼 보인다. 유백색에서 회갈색으로, 때로는 푸른빛으로 번지는 화면은 자연의 시간을 드러낸다. 도자기의 표면을 그린 화면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호흡하며 관람자에게 깊은 정적과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에게 회화는 완결된 형태보다 흐름의 증거이며 시간과 감정이 스며든 존재로 남는다.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단순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마주한다. 표면의 거친 질감은 세월의 흔적처럼 다가오고 흙이 불을 견디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듯 인간 또한 시간을 통과하며 성장하고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작품 앞에 서면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고 사물의 본질이 드러난다. 한 점의 화면 안에는 흙과 불, 물과 공기 그리고 인간의 의식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세계가 담겨 있다. 그것은 물질의 예술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묻는 사유의 장으로 확장된다.

도자기의 형태와 표면 그리고 그 안의 빈 공간은 우리 각자가 품고 있는 내면의 시간과 닮아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 일이며 동시에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부드러운 빛과 온기가 머문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천천히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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